2015년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오후 5시, 캠브리지 메사추세츠의 하버드 캠퍼스 내의 대학교회,
위도 높은 북반구의 겨울은 해가 빨리 저물어 벌써 어둑어둑 합니다.
엘니뇨의 영향으로 올 겨울은 참 따뜻합니다.
무려 영상 18도에 하루종일 부슬부슬 내린 비 덕분에 습하고 따뜻합니다.
길건너 교회에 가기 위해 밝은색 원피스에 구두를 신고 가벼운 블레이져를 걸치고 문밖을 나섭니다.
교회 입구를 들어서기전에 건물앞 벤치에 노숙자 한명이 두터운 옷을 겹쳐 입고 앉아 있습니다. 그를 지나쳐서 교회에 들어갑니다. 포인세티아로 장식한 교단은 붉고 높이 올린 초에는 불들이 환하게 켜져 있습니다. 예배 시작 20분 전인데 자리가 벌써 반 이상 차 있습니다. 가족들이 모인 자리, 모두들 예쁘게 차려입고 아이들도 뛰어다닙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나와 남편이 자리 잡은 곳에 오른쪽에는 젊은 동양 여자아이가 하나 앉아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예배 시작 직전에 자리를 옮깁니다. 그 아이 바로 옆자리에 그 거구의 흑인 노숙자 아저씨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인가 봅니다. 그 아이가 나가고 나니 그 방향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내게도 느껴집니다. 지하철이었다면 자리를 피했겠지만 이곳은 교회이고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전주로 울리는 아름다운 파이프 오르간 소리, 그리고 코를 찌르는 악취가 평안 했던 마음에 소요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퍼뜩 생각이 미칩니다. 예배 순서중 성도간의 악수와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긴장이 됩니다.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설교가 시작 됩니다. 목사님은 크리스마스를 미국인들이 즐기는 것들에 대한 묘사를 합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휴일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선물을 포장하고, 캐롤을 듣고, 현실세계의 짐을 잠시 벗어 잊어 버리고 축제를 즐깁니다. 나는 계속 노숙자 아저씨가 신경이 쓰입니다. 그의 눈에 비친 예배 그의 귀에 들리는 설교는 아마 그가 일년중 얼마 안되는 경험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목사님이 말하는 그런 성탄을 그 노숙자도 어렸을 때는 누렸을지도 모르겠지요. 목사님의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내지만 테러와 총기사고로 얼룩진 세상에서 진실로 구세주이신 예수를 생각해야 한다는 설교가 그에게는 어떻게 들렸을까요? "우리"에 "나 같은 사람들"이 아닌 사람이 함께 있으니 마음이 복잡해 집니다.
그와 악수도 하고 성탄 인사도 하고, 또 예배도중 찬송가 책페이지를 잘 못찾으시기에 찾는 것도 도와 드리고 그럭저럭 예배를 잘 마쳤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나와 잔디밭을 지나며 남편이 흥얼 거리는 캐롤을 들으며 걸었습니다. 사방은 고요한데 개를 두마리 데리고 잔디밭에 나온 남자를 봅니다. 그의 개들이 지나치다가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고 다가 옵니다. 털이 하얗고 복실복실한 개를 양손으로 쓰다듬어주니 앞발을 올려서 달려 듭니다. 좀 쓰다듬어주고 개 주인과 성탄 인사를 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집에와서 보니 밝은 원피스에 개의 발에 묻었던 흙이 잔뜩 묻었는데 젖은 타올로 대충 닦아 보아도 전혀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다음날 세탁했고 말끔히 지워 졌습니다.
나는 내 원피스에 선명하게 묻은 개의 흙 발자국을 보면서 노숙자와 악수하기를 꺼려하여 예배 시작부터 염려하던 내 마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악취가 나는 그와 닿을까 심히 두려워 했습니다. 내게 오는 개에게는 마음을 다해 사랑 하였고 반기었으나 홀로 크리스마스 예배에 온 어려운 이웃은 꺼려했습니다. 그노숙자의 더러운 옷 속에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는 내 손이 더러워 지는 것의 장벽을 넘는 것을 어려워 했습니다.
크리스마스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외모보다 더 더러운 마음속 죄를 보시고도 우리의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2015년 크리스마스 이브는 그래서 참 부끄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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