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December 30, 2015

열심히 살고 싶어도 열심히 살 수 없을때


내가 고등학교/대학교 시절에는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변명 거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 스스로에게도 무언가 당위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하기 싫은 느낌이 들 때에는 내 스스로에게 "닥치고 해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오는 결과에 보람을 느끼며 스스로 이런 행동패턴을 강화했다. 만일 스스로에게 그 일을 하게 하지 못하여서 일이 미루어지거나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오게 되면 스스로를 규율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다.

이 때 보던 세상은 보다 명쾌하고 간단했는 지도 모른다. 게으름과 어리석음의 결과는 오롯이 당사자의 몫인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그리고 포닥 생활을 하면서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기가 사람에게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납득할만한 이유( 가족의 죽음, 인간관계의 문제)가 있어서 찾아오기도 하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찾아오기도 한다. 정말 아무런 변명의 여지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간단한 일 조차 도저히 하지 못하고 며칠 몆주를 미루는 경우도 있다. 마치 신의 의지가 나의 통제권을 앗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무력감이 짓누른다.

나는 이 시간을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이 경험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데에도 온전히 쓰이기를 바란다. 무능하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인간도 상황이 바뀌고 여건이 바뀌고 본인 안의 케미스트리가 바뀌면 놀랍게 또렷하고 명확한 집중력으로 엄청난 성과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을 수도 있다. 스스로 드라이브를 항상 걸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때로는 드라이브를 도저히 걸수 없는 때도 생길 수 있다.

나는 이런 시기를 아주 고통스럽게 맞으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냈다. 차라리 그런 시기에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해 주었으면 오히려 그 기간을 이렇게 오래 보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 힘을 빼고 파도에 몸을 맡긴채 물위에 떠있는 법을 배우기 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모르겠다. 안절부절함이 사라지니 평화가 오고 평화가 오니 오히려 상황을 헤쳐나갈 힘이 조금식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 동료 포닥이자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서 이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도 나와 완전히 같은 문제로 몇달째 괴로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일은 그와 등산을 다녀오련다.

Saturday, December 26, 2015

크리스마스이브 예배와 노숙자 at Memorial Church, Harvard University

2015년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오후 5시, 캠브리지 메사추세츠의 하버드 캠퍼스 내의 대학교회,
위도 높은 북반구의 겨울은 해가 빨리 저물어 벌써 어둑어둑 합니다.

엘니뇨의 영향으로 올 겨울은 참 따뜻합니다.
무려 영상 18도에 하루종일 부슬부슬 내린 비 덕분에 습하고 따뜻합니다.
길건너 교회에 가기 위해 밝은색 원피스에 구두를 신고 가벼운 블레이져를 걸치고 문밖을 나섭니다.

교회 입구를 들어서기전에 건물앞 벤치에 노숙자 한명이 두터운 옷을 겹쳐 입고 앉아 있습니다. 그를 지나쳐서 교회에 들어갑니다. 포인세티아로 장식한 교단은 붉고 높이 올린 초에는 불들이 환하게 켜져 있습니다.  예배 시작 20분 전인데 자리가 벌써 반 이상 차 있습니다. 가족들이 모인 자리, 모두들 예쁘게 차려입고 아이들도 뛰어다닙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나와 남편이 자리 잡은 곳에 오른쪽에는 젊은 동양 여자아이가 하나 앉아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예배 시작 직전에 자리를 옮깁니다. 그 아이 바로 옆자리에 그 거구의 흑인 노숙자 아저씨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인가 봅니다. 그 아이가 나가고 나니 그 방향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내게도 느껴집니다. 지하철이었다면 자리를 피했겠지만 이곳은 교회이고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전주로 울리는 아름다운 파이프 오르간 소리, 그리고 코를 찌르는 악취가 평안 했던 마음에 소요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퍼뜩 생각이 미칩니다. 예배 순서중 성도간의 악수와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긴장이 됩니다.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설교가 시작 됩니다. 목사님은 크리스마스를 미국인들이 즐기는 것들에 대한 묘사를 합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휴일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선물을 포장하고, 캐롤을 듣고, 현실세계의 짐을 잠시 벗어 잊어 버리고 축제를 즐깁니다. 나는 계속 노숙자 아저씨가 신경이 쓰입니다. 그의 눈에 비친 예배 그의 귀에 들리는 설교는 아마 그가 일년중 얼마 안되는 경험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목사님이 말하는 그런 성탄을 그 노숙자도 어렸을 때는 누렸을지도 모르겠지요. 목사님의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내지만 테러와 총기사고로 얼룩진 세상에서 진실로 구세주이신 예수를 생각해야 한다는 설교가 그에게는 어떻게 들렸을까요? "우리"에 "나 같은 사람들"이 아닌 사람이 함께 있으니 마음이 복잡해 집니다.

그와 악수도 하고 성탄 인사도 하고,  또 예배도중 찬송가 책페이지를 잘 못찾으시기에 찾는 것도 도와 드리고 그럭저럭 예배를 잘 마쳤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나와 잔디밭을 지나며 남편이 흥얼 거리는 캐롤을 들으며 걸었습니다. 사방은 고요한데 개를 두마리 데리고 잔디밭에 나온 남자를 봅니다. 그의 개들이 지나치다가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고 다가 옵니다. 털이 하얗고 복실복실한 개를 양손으로 쓰다듬어주니 앞발을 올려서 달려 듭니다. 좀 쓰다듬어주고 개 주인과 성탄 인사를 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집에와서 보니 밝은 원피스에 개의 발에 묻었던 흙이 잔뜩 묻었는데 젖은 타올로 대충 닦아 보아도 전혀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다음날 세탁했고 말끔히 지워 졌습니다.

나는 내 원피스에 선명하게 묻은 개의 흙 발자국을 보면서 노숙자와 악수하기를 꺼려하여 예배 시작부터 염려하던 내 마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악취가 나는 그와 닿을까 심히 두려워 했습니다. 내게 오는 개에게는 마음을 다해 사랑 하였고 반기었으나 홀로 크리스마스 예배에 온 어려운 이웃은 꺼려했습니다. 그노숙자의 더러운 옷 속에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는 내 손이 더러워 지는 것의 장벽을 넘는 것을 어려워 했습니다.

크리스마스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외모보다 더 더러운 마음속 죄를 보시고도 우리의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2015년 크리스마스 이브는 그래서 참 부끄러웠습니다.







Sunday, December 6, 2015

이이제이 전태일 특집 1,2 후기


이이제이 전태일 특집 들은 후기

전태일의 가족사는 참 비참했다. 아버지는 계속 사업에 사기를 당하고  공장이 침수되어 빚더미에 올라가고  어머니는 서울로 식모살이올라가고 동생은 고아원에 들어가고 가족들은 뿔뿔히 흩어졌다. 빈박스 사다가 종이박스 위에서 살고 학교도 다닐수 없었다.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이소선이라는 어머니와 전태일이라는 아들이 살았다. 그들의 살아온 선택들과 삶의 방식은 책을 읽어서 나온 것도 아니고 그저 인간의 기본적인 양심에 의해 행동한 것이다. 인간의 양심에 비추어 느끼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외면하지 않고 행동으로 살아 낸 것이다.

그는 사실 인생에 갈림길에서 남자로써 재봉사로 승진해서 돈 잘 벌고 그 자신의 비참한 가족들 부양 하면서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작업장의 사춘기 소녀들이 하루 14시간씩 한달에 두번 쉬어가면서 일하고 병드는 그 지옥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대학생 친구가 한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배움도 부족한 상태에서 홀로 근로기준법을 독학하고 그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고 비웃는 사람들이 칭하는 바보라는 이름에서 따온 '바보회'를 조직해서 노동운동을 했다.  거대한 벽 앞에서 마지막으로 분신을 선택하고 화상당한후 고통당하다가 스물세살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근대사를 배운적도 공부한 적도 없다. 부모님의 입을 통해 그리고 주워들은 이야기로 알고 있었던 박정희 시절의 역사는 근대화 산업화 경제성장의 이면에 '어쩔 수 없었던' '과도기적인' 비극이라고만 치부했었던 이야기였다. 그런데 뒤집어 보면 그 시기는 우리 역사상 "사람들" 이 가장 비참했던 시기였다. 조선시대 노비도 그만큼 비참하지 않았고 전쟁 직후의 배를 곯는 사람들도 그렇게 비인격적으로 살지 않았다. 어린 소녀들을 기계처럼 쓰고 병들면 해고해 버리는 인간의 용서받지 못할 만행이 자행되었던 암흑의 역사이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발견하고 구원을 얻은 듯 했다고 했다. 여지까지 위에서 시키면 무조건 해야 하고 그것이 당연한 법칙이라고 생각했는데 법은 그것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근로기준법을 알지못하는 여공들과 다르지 않는 생각들을 하는 사람이 많다. 경제가 않좋기 때문에, 회사가 어렵기 때문에, 해고되지 않으려면 무조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프로페셔널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우리는 생존을 두려워하여 비인격적인 고통을 당연히 받아 들여서는 안된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사회를 지옥으로 만드는 일에서 이웃과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 172회: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특집
https://www.youtube.com/watch?v=g41k56uHR3Q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 174회: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특집 2
https://www.youtube.com/watch?v=WrAnewC2v0A